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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가계도 나이 남편 영국 필립공,앤드류 윈저 찰스 3세 부인카테고리 없음 2022. 9. 9. 12:37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누구..'대영제국'의 상징
- 2022.09.09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물론 세계 현대사의 한 챕터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1926년생인 여왕은 25세에 갑자기 왕관의 무게를 넘겨받았으며 70년 재위 기간 변함없는 모습으로 역할에 충실했다. 고령에도 냉철한 판단력, 유머, 친화력을 잃지 않아 영국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었답니다
●큰아버지 스캔들에 왕위 승계
여왕은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고 가족들은 ‘릴리벳’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36년.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평민 출신과 스캔들로 왕위를 포기하면서. 갑자기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고 왕위와는 거리가 멀던 여왕은 승계 서열 1위로 올라섰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인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2차 대전 독일 공습 때도 피하지 않고 국민 단합을 이끌어 존경을 받았다. 군주가 되는 교육을 받던 여왕은 16세가 되자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여군에 입대해서 군 트럭 정비를 하면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주가 됐답니다.
여왕은 1947년에는 어릴 적 한눈에 반한 필립공과 결혼하고 이듬해 찰스 왕세자를 낳았다. 그러나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폐암으로 갑자기 서거하면서 25세 두 아이의 엄마인 여왕은 왕좌에 오른다. 여왕은 당시 케냐 순방 중이었답니다.
●대관식 TV 중계로 영국 위상 알려
여왕은 1953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이를 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해서 2700만 명이 지켜봤다. 전후 내핍을 견디며 대영제국의 영화가 시들해지는 것을 목도하던 영국인에게 자부심을 주고 대외적으로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는 후문이랍니다.
여왕은 왕실이 존립하려면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실천했다. 여왕은 변함없이 근면성실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믿음을 산 데 그치지 않았다. 여왕은 국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1957년 TV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시작하고 유튜브와 SNS도 일찍 도입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백발인 여왕이 개회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했고 영국이 큰 위기에 봉착했던 코로나19 때는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찰스·앤드루·해리 자손들 골치
필립공은 지난해 4월 99세로 별세할 때까지 70여 년 여왕의 곁을 지켰다. 젊었을 때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여왕을 향한 충성심은 굳건했다. 필립공이 떠난 뒤로 급격히 쇠약해졌고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북아일랜드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하루 입원했다. 그 무렵부터 지팡이를 짚고 올해는 간헐적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밝혔다. 이후 올해 2월 코로나19에 감염돼 고비를 넘긴 뒤로는 주요 일정을 아들 찰스 왕세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었답니다.
여왕은 자녀들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아들 찰스 왕세자의 결혼과 이혼은 세기적 스캔들이 돼버다. 며느리 다이애나비가 왕실 인기를 높였지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1996년 이혼했다. 그 와중에 후계자인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 관계인 것이 드러나 비난을 샀다. 특히 다이애나비가 비극적으로 사망한 뒤 여왕이 입장을 바로 내지 않았다가 비난이 거세져 위기를 맞았다.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망가졌고, 손자 해리 왕자는 왕실을 뛰쳐나갔답니다.
英 왕위 계승 '찰스 3세'보다 '윌리엄 왕자' 주목받는 이유
- 2022.09.09.
70년간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고 그의 장남 찰스 왕세자가 만 73세의 나이로 국왕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에 찰스 3세 국왕이 영국인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9일 뉴스1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4년 동안 후계자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48년 12월15일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출생했으며, 1958년 할아버지 조지 6세가 숨진 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어린 나이에 후계자가 됐답니다.
하지만 찰스 3세는 어머니와는 달리 영국 대중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 지난 5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당시 찰스 왕세자의 지지율이 56%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81%)는 물론이고, 아들 윌리엄 왕자(77%)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영국의 전문가들도 찰스 3세의 재위가 길게 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왕실 작가 필 댐피어(Phil Dampier)는 언론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찰스 3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라며 "(찰스 3세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제 그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 부부를 눈여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3세가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찰스 3세는 1981년 다이애나비와 결혼했고 이들 사이에서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태어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1996년 결별했다.
이후 다이애나비는 언론을 통해 찰스 3세가 카밀라 파커 볼스(Camilla Parker Bowles)와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실제 찰스 3세는 다이애나비가 사망한 뒤 카밀라 파커 볼스와 결혼했고, 이로 인해 영국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지난해 4월 아버지 필립공이 사망하고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직무대행 비율을 높이며 자신이 왕위 계승 서열 1위임을 꾸준히 대중에게 각인시켰답니다.
또 그는 자선 사업에도 힘을 썼고, 특히 기후 변화 등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찰스 3세는 420여개의 자선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6월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100년 후에도 군주제가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영국인 41%만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특히 18~24세 연령층에서는 "군주제 유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74세에 왕위 오른 찰스 3세.. 영국인 마음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
- 2022.09.09.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큰아들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게 됐다. 왕세자로 책봉된 이래 64년을 기다린 셈이다. 그러나 다이애나비와의 이혼 등으로 시작된 부정적 여론으로 영국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 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 5월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찰스 3세는 5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여왕 81%, 아들 윌리엄 왕자 77%보다 훨씬 뒤처지는 수치다.
그가 영국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다이애나비와의 이혼 때문이다. 찰스 3세는 1981년 당시 19살이던 다이애나비와 결혼했으나, 다이애나비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찰스 3세의 불륜을 주장하면서 비난 여론에 시달렸답니다.
다이애나비는 1992년 ‘다이애나의 진실’이란 책을 통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폭로했고, 찰스 3세를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다이애나비는 1997년 쫓아오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찰스 3세는 다이애나가 사망한 뒤인 2005년 불륜 상대로 지목된 카밀라 파커 볼스와 결혼했다. 올해 초 여왕이 카밀라를 왕비로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지만, 아직까지도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찰스 3세는 특히 ‘군주제 폐지’ 여론도 잠재워야 한다. 앞서 군주제 폐지 운동 단체 리퍼블릭은 “여왕이 승하하고 나면 영국 왕실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며 “찰스 왕세자가 최선이 아니다. 우리가 국가원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답니다.
그는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 가족과 사우디 기업인 등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자신이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보내는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찰스 3세는 1948년 11월 14일 여왕과 남편 필립공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여왕이 25세 나이로 즉위한 이후부터 승계 1순위였다. 찰스 3세는 9살이던 1958년 공식적으로 영국 왕세자로 책봉됐다.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영국도 세계도 울었다
- 2022.09.09.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세계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 에펠탑에 불이 꺼지고 백악관은 조기를 게양하는 등 애도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왕실은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52년부터 70년 4개월 동안 지속됐던 엘리자베스 시대가 막을 내렸다.
여왕은 국가에 헌신하고 개인적 감정은 뒤로하는 모습으로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대영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을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하며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올해 6월 치러진 즉위 70주년 기념 행사에선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축하를 보냈다.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소식을 접한 런던 시민들은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가져온 꽃들을 펜스에 매달았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여왕을 애도했다. 시민들은 가수 퀸의 노래 “God Sa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을 부르기도 했답니다.
런던 시내의 화려한 광고들도 사라졌다. 시내 중심지인 피카딜리 서커스 앞 대형 전광판에 있던 코카콜라 등의 글로벌 기업 광고들이 내려가고, 여왕의 활짝 웃는 얼굴과 함께 그녀의 재위 기간이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영국인들과 관광객들은 그 사진을 찍으며 애도의 뜻을 내비쳤다.
골프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종목은 경기를 취소했다. 당장 잉글랜드 서리에서 열리고 있는 DP 월드 투어(옛 유러피언투어) BMW PGA 챔피언십 골프 대회가 중단됐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2∼4부 리그를 운영하는 잉글리시풋볼리그(EFL)는 9일로 예정된 번리와 노리치시티 경기 등을 취소했고 10일과 11일 주말 경기 개최 여부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악관과 모든 공공장소, 군부대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역시 의회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파리에선 에펠탑 조명이 꺼졌다. 독일 연방하원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내년 예산안 관련 본회의 토론을 중단하고, 의원 전원이 기립해 여왕을 기리며 묵념했다. 브라질은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국왕이자 국가 원수로 받드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 호주는 2주간 국회를 중단하기로 했으며 뉴질랜드도 국가 공식 애도 기간에 접어들었다.
세계 지도자들은 성명을 내고 여왕의 업적을 기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왕이 아낌없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며 “의무에 헌신한 본보기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확고한 증인”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왕위를 이어받은 찰스 3세 국왕에게 조의를 표하며 보낸 서한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계 무대에서 권위와 함께 정당한 사랑과 존경을 누렸다”며 “나는 당신이 이 어렵고 회복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용기로 이겨내길 바란다”고 기원했답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강화한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위엄과 불변의 정치인”이라며 “군주를 넘어 시대를 정의했다. 여왕의 유산이 영국 역사와 전 세계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는 서거 이후 열흘간 국장으로 치러진다. 서거 닷새 후인 13일부터는 닷새간 여왕의 유해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하루 23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된다. 여왕의 유해는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 지하에서 영면에 든답니다.
권성동 "엘리자베스 여왕, 전세계 지도자 귀감..英국민에 위로"
- 2022.09.09
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전 세계 지도자의 귀감이 됐다"며 애도를 표했답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 재위하면서 영연방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여왕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며 "6명의 대통령을 직접 만났고 1999년에는 하회마을을 직접 방문해 생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 스무살이 되자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자원입대해 보급차량을 운행하기도 했다"며 "엘리자베스 2세는 온화하고 겸손했으며 책임의식이 강했다"고 했다.
이어 "왕실의 일원으로서 보여준 품위는 영국의 상징적 구심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훌륭한 여왕과 작별하는 영국 국민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