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야구 최동원 가족 AI 동생 최수원 아들 감독 사망 나이 키 프로필
    카테고리 없음 2023. 12. 9. 12:48

    故 최동원 동생 최수원 심판 "끝까지 야구와 함께 했다"
    - 2011. 9. 14

    최동원은 끝까지 야구인이었다. 임종 나흘 전까지 프로야구를 시청하고 늘어난 관중을 보며 흐뭇해했답니다.

    최수원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은 3형제 가운데 장남인 최동원의 막내 동생이다. 그는 14일 형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애통함을 털어놓았다.


    최 심판원은 "지난 7월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를 참석한 뒤 병세가 악화됐다"고 밝혔다. 당시 최동원은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다. 벤치를 지키며 모교인 경남고의 선전을 응원했다. 수척해진 모습에 참석한 야구인들은 모두 그의 건강을 우려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이 좋아졌다. 다음에는 꼭 마운드에 서겠다"며 오히려 동료들을 걱정했다. 그리고 이는 공식석상에서 내놓은 마지막 말이 됐다.


    최 심판원은 "투병생활이 길어 (형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기피했다"면서도 "경기에 참석한 건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강한 의지로 다시 마운드를 밟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답니다.

    그의 말처럼 최동원은 그라운드에 서길 바랐다. 경남고 출신 왕년의 스타들을 이끈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은 경기 전인 7월 2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동원에게 말을 해놓았는데 참석할지 모르겠다"며 "뛰고는 싶은데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했다. 경과를 보고 출전여부를 결정짓겠다"라고 말했다.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이틀이 지났지만 몸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최동원은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을 응원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무리를 한 탓일까. 최동원의 병세는 그 뒤 더 악화됐다. 최 심판원은 "바로 일주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며 "(형이) 가족들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간에 잠시 병원을 나왔지만 상황이 악화돼 다시 입원하게 됐고 결국 금일 새벽 2시 2분 사망했다"고 말했다.

    임종 전까지도 최동원은 야구와 함께했다. 최 심판원은 "(형이 숨을 거두기) 나흘 전까지 TV 중계를 통해 야구를 시청했다. 관중이 늘어난 것을 보고 좋아했다"며 "야구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 깊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내 마음속에 영원한 에이스"라고 강조했답니다.

    최동원의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답니다.

    "아버지의 팀에서…" 최동원 우승 이끈 롯데영웅의 아들, 고향에 돌아온 속내
    - 2023. 11. 15

    '최동원 4승'으로 기억되는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가 이후 39년 동안 단 1번만 우승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지 관심이 간답니다.


    지금까지 최동원이 불멸의 롯데 영웅으로 불리게 된 시리즈지만, 당시 한국시리즈 MVP는 7차전 역전 3점포를 쏘아올린 고 유두열이다.

    그 유두열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재신 롯데 1군 주루(1루)-외야 수비 코치입니다.

    아버지 유두열은 1991년까지 롯데에서 일발 장타를 지닌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도 롯데-한화 코치를 거쳐 고교 코치를 역임하다 2016년 투병 끝에 타계했다.

    유재신 역시 사직초-사직중을 나온 '부산 사나이'이자 롯데 찐팬이었다. 다만 프로에선 부산과 인연을 맺을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선수 시절엔 현대 유니콘스-키움(우리, 넥센) 히어로즈-KIA 타이거즈에서 뛰었고, 2021년부터 3년간 두산에서 코치로 활약했답니다.

    그러던 와중에 김태형 롯데 신임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지난달 30일부터 김해 상동에서 진행중인 롯데 마무리캠프에 합류했다.

    유 코치는 "감독님이 '도와달라' 하셔서 기꺼이 함께 하기로 했다. 주위에선 무섭다고 하는데, 제겐 늘 잘해주셨다. 언제든 불러주면 한번 가고 싶은 팀이었다"며 웃었다. 고교 시절 부산고에서 북일고로 전학간 이후 약 20년만의 고향 컴백이다. 어머니와 아내도 기뻐한 선택이었답니다

    '그 장면'은 유재신 입장에선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박힐 만큼 들었을 이야기다. 유두열은 당시 문제의 타석 전까지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에 불과했지만, 기적 같은 역전포 한방으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양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최동원과 김일융의 운명을 가른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팀이고, 내 고향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늘 봐왔던 팀이니까, 아무래도 느낌이 남다르다."

    선수 시절부터 견고한 수비와 기민한 주루로 이름높던 그다. 특히 2013년 히어로즈 시절 2사 만루에서 LG 투수 봉중근이 2루를 견제하는 사이 홈스틸을 성공시킨 장면이 유명하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 KBO 역대 최초 부자(父子) 한국시리즈 출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답니다.

    유 코치는 롯데 선수단 분위기에 대해 "새로운 감독님, 코치님들이 와서 그런지 선수들이 굉장히 의욕적이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분위기가 인상적"이라며 웃었다.

    김민재 수석-김광수 벤치-김주찬 타격-주형광 투수-김민호 수비코치 등으로 구성된 롯데 1군 코치진에선 최연소다. '노피어 주루'를 강조하는 롯데의 흐름과도 잘 맞는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