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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다 군대 병역 나이 직업 학력 대학 국적 프랑스카테고리 없음 2024. 6. 24. 14:45
이름 본명
이예다
출생 나이 생일
1991년 (33세)
고향 출생지
인천광역시
국적
불명
가족
아버지, 어머니, 아들 1명
학력
유한대학 (산업일본어과 / 전문학사)
거주지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드메른주 이브리쉬르센
병역
미필
종교
무종교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출소 후 여기까지 10년 걸렸네요"
-2018. 6. 28
28일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결정을 앞둔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오후 2시 넘어 언론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합헌 소식에 이어 2019년 12월31일까지 병역법 5조 개정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취지의 판결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헌재의 선고를 방청한 병역거부자들이 헌법재판소 정문으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중에는 차진화씨(35)도 있었다.
차씨는 이번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한 당사자 중 한 명이다. 종교적 이유로 7년 전 헌법재판소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차씨는 28세가 되던 2011년 병역법 88조 1항을 대상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이 조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현역 입영·사회복무요원 기준 3일 등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답니다.
차씨는 2003년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의 '양심적 병역거부' 등 현재까지 1만9000여명의 종교인과 평화주의자가 처벌받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씨는 판결을 받지 못한채 그해 10월 교도소로 가야 했다. 차씨는 "답답했고, 끝없는 기다림이었다"고 회상했다.
2013년 1월, 1년 3개월의 복역을 마친 차씨는 고향 경남 김해로 내려가 건물 청소일을 하며 다시 4년을 기다렸다. 26일 재판 일정이 잡힌 것을 안 차씨는 감상에 젖을 겨를도 없이 곧바로 차표부터 예매했다. "직접 보겠다"며 28일 새벽 4시 불 꺼진 헌법재판소 앞에 도착한 그는 오후 1시, 1번으로 방청권을 받았습니다.
이날 헌재 선고를 보고 나온 차씨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곧 눈가가 붉어지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차씨는 "오랜기간 '투쟁아닌 투쟁'을 했는데 이제 마음이 편안하다"며 "대법원에서도 앞으로 이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이예다씨(27)도 현지시각 아침 7시 헌재의 선고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씨는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신청을 했고, 9개월 뒤 난민지위를 획득했다. 이씨는 병역 거부로 프랑스 난민자격을 얻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씨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나눈 인터뷰에서 "문재인정부의 대체복무제도 도입 공약도 있었고, 그동안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져 여러 차례 무죄판결이 나왔기에 병역거부 처벌 위헌 판정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했답니다.
이씨는 또 "대체복무제도 도입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도조차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체복무제도가 군대의 '대체'이기 때문이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이번 판결 이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의 간사 이용석씨(37)도 감회가 남다르다. '투쟁 15년'의 첫 결실과 다름없는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2003년 스승의 날 이후 여태까지 '투쟁의 삶'을 살았다. 매년 5월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이씨는 학점을 잘 받고 친구들과 즐겁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오태양씨의 2002년 재판과 2004년 동부지법 법정구속을 지켜보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투쟁과 더불어 인권운동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전쟁없는 세상'을 꾸린 것도 이때쯤이다. 이씨는 "여호와의 증인말고도 평화주의자, 불교, 개신교와 심지어 성공회 신자도 있어 이들을 위한 활동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창립멤버 중 연대나 후원을 제외하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은 이씨가 유일하다.
이씨는 이후 15년, 28일까지 5524일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시민운동과 함께 무기생산기업 감시, 한국산 최루탄 수출반대, 평화주의 사회운동으로 활동 폭을 넓혔답니다.
선고 뒤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난 이씨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전해철 의원이 준비한 대체복무 도입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출소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 걸렸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고 강조했습니다.